작년 12월 집안에 이런 저런 소동들이 있고나서는 급발진으로 자취방을 구했다. 서른줄이 다 되어서야 시작하는,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첫 자취. 40평짜리 방 세개 딸린 집보다 혼자 사는 4평짜리 원룸이 더 넓게 느껴지고, 음식이 들어갈 틈도 없이 꽉차있던 최신형 냉장고보다 고작 제로콜라 한 박스가 들어가있는 구형 냉장고가 더 풍족해 보이는건 왜일까. 아마도 공간을 채우는 게 물건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뿐이라서일 거다. 필요 없는 것들로 가득했던 집에서는 한참을 정리해도 내 자리는 좁아 보였는데, 지금은 작은 원룸 한 칸이라도 내 마음대로 넓게 쓸 수 있다. 바닥에 널브러져도 되고, 새벽 세 시에 불을 켜고 밤새도록 게임을 하더라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.
설겆이와 빨래마저 재밌어지리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…물론 마지막 두 개는 얼마 안가 거나하게 쌓여있겠지만, 아무렴 어떤가 아직까지 나의 자취생활은 꽤나 성공적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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